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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1,2절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들이 세상에 있습니다. 그들은 약하고 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순둥 순둥한 양들을 세상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고 자꾸 잡아먹으려고 합니다. 이때 이리들이 덮치는데 그 이리들을 보면 삯꾼들은 다 도망가 버립니다. 도둑들과 이리들은 양들을 잡아먹으려고 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담을 넘습니다. 문은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을 통해 오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즉,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지 않으면서 현혹시키고 유혹하는 자들은 바로 도둑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불노소득으로 높이기 위해 약탈해 가는 것입니다. 거짓과 악한 행동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하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가가는 사람과 예수님의 이름 없이 다가가는 사람들을 구별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지 않는 자들은 다 도둑들이요 이리떼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교회에서도 이단들의 특징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교주들의 교리로 나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다 거짓 목자들인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사람들만이 목자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7,9절
예수님은 이러한 양들의 문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할 때만이 진정한 양식을 얻고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그 어떠한 악의 세력도 결코 뺏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견고히 붙들려서 서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악한 세력들은 모두 빼앗고 죽이고자 하는 세력들입니다. 달콤한 감언이설로 속여서 빼앗습니다. 결국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약 하는 세력이나 사기 치는 세력, 그리고 허랑 방탕하는 세력들이 감언이설로 꾀여서 데려가면 결국에는 탈탈 털려서 어떻게 됩니까? 만신창이가 되고 맙니다. 이단의 세력으로 끌려간 사람들도 결국에는 만신창이가 되어 가족도 잃고 돈도 잃고 직장도 잃고 이상한 사람이 되어 살다가 그 이단의 세력이 해체될 때 같이 해체가 되고 맙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알면 늦습니다. 이미 입 속에 똥이 들어와 버리기 때문이지요. 딱 보고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방법 중에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예수님의 문으로 드나드는가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정답인 것입니다. 나머지는 다 배설물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1,13절
선한 목자만이 양들을 위해 이리 와 싸웁니다. 도적과 싸웁니다.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삯꾼들은 내가 왜 내 양도 아닌데 목숨 걸고 싸웁니까? 하면서 도망쳐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주인과 삯꾼들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 붙들려 있어야 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나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나를 목숨 걸고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 주군은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다른 어떤 이들에게 맹세해 봐야 자기 양이 아니니 위험할 때에 다 도망갑니다. 그 어떤 때에도 버리지 아니하시는 예수님께 붙들려 있어야 되겠습니다. 할렐루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30절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삼위일체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분명히 하나님과 예수님은 다른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지막날을 아버지는 아시지만 그 아들도 모른다고 한 걸 보면 같은 분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은 맞지만 아버지 하나님과는 다른 분이시지요. 근데, 하나라고 하시는 것을 보면 아마도 여기서 하나라는 뜻은 그냥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나타내는 거 같습니다. 하나님으로써 죄와는 결별된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분으로써의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인류가 영철이 순이 이렇게 이름이 다르고 다 다른 존재이더라도 인류로써 하나이듯이 말입니다. 사람이지만 다 다른 사람이듯이 하나님도 하나님이시지만 다른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 하나님. 성령님 하나님. 일단은 그렇게 이해가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예수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요한복음 1장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38절
예수님의 말만으로 믿지 못하면 그 행하신 능력을 보고 믿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나님 안에 계시고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동체이신 것처럼 두 분이 같이 계시다고 하십니다. 두 분이 서로 함께 있어 모든 것을 공유하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있고 하나님 아버지를 통해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하신 일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자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이십니다. 어려운 얘기이지만 그렇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1장 리뷰에 대한 마무리 결언>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 그 사람의 믿음은 행함을 보고 판단할 수 있다고 했으며, 예수님을 바로 믿지 못하겠거든 그 행한 일들을 보고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믿음에 대한 행함은 확실한 증거로써 채택될 수 있기에 의심 많은 이 시대에 우리가 행함으로 서로 본을 보이고 행함으로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 맞다고 사료됩니다. 오늘도 행함으로 얻는 의의 증거가 넘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