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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9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16절
빌라도가 드디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었습니다. 그는 진리를 알고 있었음에도 군중들의 반란이 무섭고 자기 자신의 자리가 뺏길까 무서워 예수님을 부인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보다도 사람의 영광을 더 구한 것이며 하나님보다 사람들을 더 무서워한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오늘날 사도신경에 빌라도 본디오가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본디오 빌라도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 같습니다. 이는 자칭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문제가 되는 사항이라고 봅니다. 예전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보면 종교는 기독교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지 않았다면 전혀 알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본인이 크리스천이라는 내색 자체를 하지 않고 말씀을 증거 하지도 않고 예수님을 꺼내지도 않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 이유가 보면 크리스천이라고 하면 세상에서 당하는 핍박과 조롱, 그리고 무시, 경멸의 시선들과 손해 보는 사항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많은 크리스천들이 있지만 주일날 예배만 나가고 일반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라고 말씀하셨고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 오직 예수님을 진실되이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야 영생이 주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돌아보면 그 모든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다고 하신 예수님을 보면 겉으로는 기독교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는 기독교인들이 넘쳐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며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생명으로 이르는 문은 좁은 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길이 협착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지 않습니다. 이 땅에 널려있는 기독교인들이 다 생명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라면 예수님께서 좁은 길이라고 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어느 정도 알았던 거 같습니다. 최소한 두려원 한 정도는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지위를 더 사랑하여 진리를 외면하고 사단에게 예수님과 자신의 양심을 나어 줘 버렸습니다.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이 잃어버린 바 될까 두려워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 중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크리스천이라는 것이 들통나면 같이 어울려서 죄짓기도 힘들고, 함부로 행동하기도 민망하니 아예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세상에 맞춰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신우회에 가보면 진짜 크리스천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나 고위 직으로 넘어가면 더 심각합니다. 소위 중역을 달게 되면 아예 신우회에 안 나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직위를 사랑하여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그 직위를 더 사랑하며 하나님보다 세상의 죄를 더 사랑하는 마음이 이러한 숨겨진 기독교인들을 만들고 예수님을 부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물론 제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비춰보면 못 들어가는 것이 맞을 거 같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에 비추어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나가 진정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 복음 전파에 힘쓰고 늘 예수님 안에 붙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하며, 좁은 길을 걸으며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 맞습니다. 다니엘처럼 일국의 재상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삶을 보여주면서 남들이 뭐라 하든 굳게 그 길을 가는 것이 진정한 믿는 자일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삶일 것입니다.
나가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부인하면 , 즉 예수님을 부인하면 세상에서 좀 더 죄짓기 좋고 함부로 살기 좋겠지만 대신에 예수님을 잃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잃는 것이 두렵지 않고 세상에서 낙오되는 것이 두렵다면 그렇게 살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치러야 합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며 예수님의 말씀이 심판을 해 주실 것입니다.
"성경에 그들이 나 옷을 나누고 나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24,28,36절
오늘 본문 말씀은 좀 슬프면서도 비장하고 힘이 빠져 보이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을 오히려 이기셨다고 하십니다. 성경을 응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해 나오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결국 돌아가시기 직전에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성경에 나오는 예언과 하나님의 사명을 다 이루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반박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힘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기신 것입니다.
나 자신도 살면서 성경 말씀을 지키고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인내하고 참아야 할 때 세상에 무릎 꿇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며 사단을 이긴 것이 되므로 승리의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옷을 찢어 갖느라 그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릅니다. 무지한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되며 결국엔 우리가 승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성경을 응하게 하시기 위해 인내하시고 참으신 예수님을 격하게 찬양합니다. 내 자신도 세상에서 세상을 이기기 위해 인내하고 참으신 예수님처럼 본받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나를 공격하고 음해하며 없이하고자 하는 세상 가운데서도 굳게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들을 전파하며 실제적으로 믿는 자로서의 행동을 보이는 삶을 죽기까지 충성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믿는 자들이면 죽기까지 충성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믿는 자들이 열매 맺는 방법은 죽기까지 믿음으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믿는 자는 예수님이 하신 것뿐 아니라 더 큰 것도 하리니.
과거 믿음의 조상부터 시작해서 오늘날의 믿음의 동료들을 보면 대부분 죽음을 각오한 믿음으로 뛰어든 삶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갔으며, 믿음으로 아들을 죽음을 각오하고 제물로 바치려고 했고, 모세는 믿음으로 나이 80에 죽음을 각오하고 바로에게 나아갔고, 여호수아는 믿음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정복전쟁을 펼쳤으며, 기드온은 믿음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몇 백 명으로 수만의 적진에 뛰어들었고 다윗은 믿음으로 골리앗을 치러 나갔으며, 다니엘은 믿음으로 사자굴에 들어갔고, 에스더는 믿음으로 왕 앞에 나아가 진언했으며, 사도들은 믿음으로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증거 했으며, 바울은 믿음으로 이방을 다니며 전도하고 오늘날의 선교사들은 믿음으로 각종 이방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고 수많은 열매가 우리 앞에 펼쳐졌습니다. 할렐루야~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38,39절
예수님이 돌아가셨고 따르던 제자들마저 다 흩어졌지만 이때에 용기를 내어서 예수님께 나아간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아리마대 사람 요셉입니다. 그는 원래 믿는 제자였지만 유대인들이 두려워 그것을 숨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뚜껑이 열려서 믿음으로 빌라도에게 나아가 시체를 내어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이게 쉬워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이 두려워서 숨겼던 사람인데, 이제는 유대인뿐 아니라 빌라도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달라고 한 의도는 분명히 예수님을 추종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자신을 예수님의 제자로 드러내 사건인 것입니다. 더더구나 그는 부자였고 가진 게 많은 사람임에도 자신이 가진 것을 몽땅 잃어버릴 수도 있는 위기에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믿음을 가지고 에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니고데모도 그렇습니다. 바리새인이었던 니고데모는 자신의 큰돈을 들여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당시에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을 죽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사람들이고 소위 금수저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러한 세상의 가치를 벗어나 잃어버릴 것을 각오하고 조롱당할 것을 각오하고 큰돈을 들여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이 더더구나 죽었다고 생각되는 마당에 그렇게 한다는 것은 보통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다가도 예수님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다 떠나버리는 사람들이 많은 데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장 리뷰에 대한 마무리 결언>
이처럼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고 생각되는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사모하여 예수님께 나아간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바로 세상에서 나에게 유리한 것이 없다고 해도 진리를 사모하여 에수님께 목숨 걸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야말로 순수한 믿음이며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 믿음입니다. 할렐루야.
세상에서 나의 이익과 관계없이 나의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순수하게 진리를 사랑하고 의를 사랑하며 하나님과 에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자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