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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26,27절
예수님은 무리들이 찾는 이유가 어떤 신령한 표적을 봐서 무슨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고 단순히 배가 부르도록 먹을 것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일차원적으로 단순히 배가 불러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사실 개 돼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동물이든지 먹을 것을 주고 배부르게 해 주면 다 따릅니다. 개가 주인만을 따르는 것도 그렇지요.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신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무엇인가요? 우선 양식으로 표현되는 문구는 예수님 말씀 중에 예수님 자신을 먹고 마시라고 하실 때가 많은 것을 보면 예수님 자신임을 의미합니다. 일용할 양식, 즉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것.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2,33절
모세가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우선 모세가 떡을 준 것이 아닙니다. 떡을 준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착각을 하면 안 됩니다. 야곱이 우물을 우리에게 준 것도 아니요, 모세가 우리에게 만나나 메추라기를 매일 공급해 준 것도 아닙니다. 그분들도 어차피 하나님께 기도했을 뿐이요 실제 능력자가 아닙니다.
진짜로 능력자는 바로 이러한 것들을 만들고 내려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목사님들이 혹은 장로님들이 무엇을 해 주시기를 기도해 달라고 하지요. 가톨릭에서는 성모 마리아에게 무언가를 해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다 뒤집어쓰고 죽어주신 이후로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성막 자체가 찢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이제 직접 공급자 되시는 하나님께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구약의 시대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은 두 번째로 이러한 먹을 것 외에 참 떡을 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참떡을 내려 주사 세상에 생명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참 떡은 무엇이며 어떻게 생명을 주신다는 것일까요? 이 모든 말씀들이 아리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바로 알아듣기 쉽게 얘기해 주시면 될 텐데 이렇게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도 이해를 잘 못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잘 알아먹겠냐?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우리에게 하늘의 일을 얘기하면 잘 못 알아먹으니 이렇게 알아듣기 쉽게 비유 혹은 빗대어 얘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께로부터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생명은 단순히 살아있는 생명체의 생명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생명 즉 영혼을 포함한 것을 의미합니다. 동물들에게 혹은 식물들에게 생명이 마찬가지로 있지만 우리 인간들처럼 근본적인 생명인 영혼이 없습니다. 인간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지요. 이 영혼이 바로 예수님께로 나왔고 소멸되지 않는 영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육체의 생명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은 동물이나 식물이나 생명체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한 생명인 영혼은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더러워진 그 영혼이 돌아갈 수 있는 하나 님되신 예수님은 너무나 거룩하셔서 그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다시 깨끗해져야만 갈 수 있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그 더러워진 영혼은 따로 모아져 태워지게 됩니다. 불로 심판받는 것입니다. 영원히 타는 못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육신의 생명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의 영혼을 위한 참 떡을 주신다고 하시는데, 바로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시는 데 예수님이 참 떡이니 먹고 영원히 배부르며 우리의 영혼을 죽지 않게 유지해 주는 영혼의 양식이 되십니다. 영원히 배부른다는 것은 한 번만 먹어도 영원히 배부른다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먹어야 되지요. 하지만 영원히 배부르다는 것은 이 땅의 음식들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이 땅의 음식들은 유한합니다. 없어지기도 하고 흉년이 들면 줄어들기도 하므로 배고플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줄어들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니 영원히 먹을 수 있고 배부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먹을 것이 없어도 배부르다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이 표현은 보통 어떨 때 쓰나요? 뭔가 흡족한 기쁨이 주어지면 먹지 않아도 배부를 때가 있습니다. 승진을 하거나 힘들게 시험에 합격하거나 경사가 나거나 하면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영혼이 기쁨을 가지게 되면 배부르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이 기쁨으로 배부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영혼을 기쁘게 하고 배부르게 하실 참 떡 되신 예수님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먹고 마실 때, 즉 예수님을 경배하고 따를 때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배부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믿고 따를 때 누구나 첫사랑의 감격과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참 떡입니다. 그러한 감격과 기쁨을 매일 맛보기를 원하십니다.
누구나 주셨고, 값없이 주셨고, 영원히 주셨습니다. 매일매일 우리가 만나를 거두러 나갔듯이 오병이어의 떡과 물고기를 먹으러 들판에 나갔듯이, 우리의 참 떡 되신 예수님을 먹기 위해 매일매일 광야로 들로 나가야 합니다. 광야와 들은 자녀들이 모인 예배당과 모임을 의미합니다. 물론 예수님과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과거 구약시대에서는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예수님과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나러 나가는 것, 즉 기도와 간구, 말씀 묵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장소 이 모두가 다 예수님을 먹고 마실 수 있는 곳입니다. 그곳으로 나갈 때 우리는 참 떡 되신 예수님을 먹고 마심으로 진정으로 배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5,36절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의 떡이시니 예수님께로 나아가면 결코 주리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육체로 먹고 마시는 일차원적인 얘기가 아닙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육체를 위해 먹고 마시는 것도 주신다고 마태복음 6장 33절에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 육체를 위한 음식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 즉 예수님께로부터 나온 생명을 배부르게 할 수 있는 양식 즉, 예수님 자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과 기도로 호흡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에게 영혼의 양식이 채워지며 우리의 영혼이 배부르고 목마름이 해갈되는 것입니다.
이 영혼의 만족을 위해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가면 우리는 틀림없이 무한한 기쁨과 생명과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고 보고도 모른 체하면서 믿지 않으면 이러한 기쁨의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계속 목마르고 주리게 되며 종국에는 죽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40,47,48,53절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아들 즉 예수님을 보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다 살리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마지막 날에 살아나게 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영원히 타는 못에 던져져 죽게 된다고 하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63절
위에서 계속 언급된대로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우리의 참 양식은 육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혼을 위한 것 즉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께로부터 나온 영혼을 위한 양식입니다. 육신은 곧 죽어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무익한 것입니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6,67절
이러한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시니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 떠나가고 소수만이 남았습니다. 떠난 자들이 다시는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이해를 하지도 못했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먹을 것만 추구하던 사람들은 다 떠난 것입니다. 열 두 제자도 남았는데 예수님은 너희도 갈래?라고 물어보십니다.
제자들은 가지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인줄을 믿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고 어느 정도 이해를 했습니다. 물론 완벽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인 것만큼은 확신하였기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떠나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라는 사실조차도 믿지 않았습니다. 당장 나에게 이로움을 주냐 안 주냐만 따졌습니다. 어리석기 짝이 없으며 영적으로 무지해도 한참을 무지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 리뷰에 대한 마무리 결언>
우리도 이처럼 일차원적으로 나에게 주어지는 이득만을 위해 예수님을 따른다면 저 많은 무리들처럼 언젠가 떠나가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남아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생명의 근원 되심을 믿고 따라야 됩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영혼의 양식되시는 예수님을 영적으로 이해하고 늘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삶을 살므로 늘 기쁨이 충만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늘 은혜와 평강이 넘쳐나며 우리의 영혼이 배부르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매일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즉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