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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 리뷰

블로깅1 2023. 11. 10. 22:00

요한복음 8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시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7,9절


예수님은 이 땅에 죄 없는 자는 없다고 하십니다. 즉, 남을 정죄할 자격이 있는 자는 죄가 없는 자인데, 인류 중에 그런 죄 없는 자가 없으니 남을 정죄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그럼 지금 행해지고 있는 인간 세계의 재판과 정죄는 무엇일까요? 올바르고 진정한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이거나, 혹은 지금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심판은 그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심판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벌어질 심판이 진정한 심판이자 영원한 심판이기에 이 땅에서의 심판은 무게감이 없는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모두가 돌을 나려 놓았다는 것을 보면 모두가 죄인이자 자신을 돌아보면 자신도 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 앞에서 발견된다는 것도 놀랍니다. 평소에는 나가 무슨 죄인인가? 라며 살다가 빛 되신 예수님 앞에 섰을 때에야 비로소 나가 어둠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젊은이나 노인이나 할 것 없이 다 똑같다고 합니다. 누구나 다 죄인입니다. 혹자는 갓 태어난 아이가 무슨 죄가 있다는 거냐?라고 반문하실 수 있겠으나, 다 죄인입니다. 생각해 보면 어린아이들도 무의식 중에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율법을 어기지요. 나이를 불문하고 다 죄인입니다. 차이는 누가 더 깨닫고 겸손한가에 있습니다.

​나 자신을 생각해 봐도 남을 정죄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나 자신이 저지른 죄악은 생각지를 않고 남을 정죄하기에 바빴지요. 그래서 저도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평상시에는 죄 가운데 있어도 잘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저 바쁘게 살았을 뿐인데... 이렇게 말하는 게 일반적이지요. 즉, 바쁘게 살다 보니 내 죄를 깨닫지 못했을 뿐 엄청난 죄를 짓고 살았던 것입니다. 뉴스에 어떤 희극인이 그렇게 얘기를 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비단 그 사람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비춰보면 다 죄인입니다. 큰 죄부터 작은 죄까지 줄줄이 사탕으로 기억이 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죄가 다 기억나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 예수님 앞에 섰을 때 죄인임을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1,12절


이런 죄인들을 정죄할 자는 바로 하나님뿐이십니다. 죄와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분이시자, 율법을 만드시고 기준을 세우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심판장으로 오실 분은 예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정죄가 가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용서해 주신 사건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는 세상, 즉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시니 에수님을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게 되십니다. 저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거하니 죄가 없는 곳에서 살게 됩니다. 다시는 어둠이 없고, 슬픔이 없고, 죄가 없는 곳 천국이 그곳입니다. 이 땅에서도 우리가 늘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되면 어둠이 물러가고 의가 찾아오며, 슬픔이 사라지고 평강이 들어오며, 죄짐을 벗어버리고 기쁨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죄악과 공존하며 살기 때문에 늘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가능합니다. 세상 속에서 섞이다 보면 또다시 그러한 어두움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빛 되신 예수님 안에 거하면 어둠이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24절


예수님은 명확하게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않으면 그들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차피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인데,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바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심판자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았으니 그 뜻을 헤아려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1,32절


유대인중에 예수님을 믿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믿은 자들이 행해야 하는 다음 스탠스가 무엇입니까? 바로 참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예수님 안에서 사는 삶을 사는 것 즉,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과 늘 교제하고 예수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사는 삶이 바로 참 제자의 삶인데, 이렇게 살 때 진리되신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께서 참으로 자유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의 신성한 가치를 알고 있습니다. 그 자유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기도 합니다. 자유가 무엇인가?라고 하면 내가 어떤 것에도 속박당하지 아니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우리 모두는 죄의 속박에 당해 있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지만, 여러 가지 죄가 주는 속박으로 묶여 있어서 참으로 자유롭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자유를 위해 여전히 많은 데모와 여전히 많은 시위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헌법이 보장함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자유입니다. 불공정입니다. 이는 우리가 모두 죄 가운데 있고 사단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악한 도적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자기의 양 떼가 아니므로 죽이고 도적질 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 인간의 자유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사단 자신의 유익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죄 가운데에는 진정한 자유가 없고 우리 인간에게 유리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요? 죄가 주는 것에 이끌려 다니지 않는 삶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죄가 주는 달콤함에 잠시 속아 그것을 받아먹으면 계속해서 그것을 쫓아다니게 됩니다. 결국에는 사단이 쳐놓은 그물망에 걸려 죽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세상에서 맞다고 생각되는 사상과 행동들, 그리고 죄의 달콤함들을 계속 맞보는 것이 자유라고 착각하고 그렇게 살지만 실은 갈증을 해소하지 못할 우물물과 같습니다. 그럼 계속 마시면 되지 않나요?라고 할 수 있으나 그 우물물이 영원하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동나서 없어질 때 그리고 계속 물을 마셔야 되니 얼마나 귀찮고 답답한가요? 진정한 자유라고 부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냥 흉내만 낸 자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주는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질투와 전쟁, 시기와 교만, 이러한 것들이 우리 영혼을 속박하여 불안하게 하고 두렵게 하여 자유함과 해방감을 누리게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죄가 주는 속박에서 벗어나 참으로 자유한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진리 되신 예수님을 알아야 되고, 이를 위해 예수님 안에 거하는 제자의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온갖 걱정거리와 두려움 죄짐, 사망권세로부터 벗어나 참으로 자유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34,36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 되는데, 이를 스스로 풀고 나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를 풀어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자유롭게 해 주시면 우리가 참으로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51절


예수님은 예수님의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의미이지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분명히 우리 육신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죄가운데 있으면 사망하게 되지요, 육신뿐 아니라 우리의 영혼까지도 사망하게 됩니다. 즉, 지옥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을 지키면 영원하 사망을 당하지 않고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망과 생명의 차이는 우리 육체의 피가 돌고 안 돌고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근원이 바로 예수님께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관점을 이 땅에만 두고 살 때는 우리 육체가 생명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명, 즉 진정한 생명은 피가 흐르는 혹은 심장이 뛰는 우리 육체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로부터 만들어진, 발생된 생명 즉, 예수님께서 주신 생명을 의미합니다. 이 생명이 죽느냐 아니냐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육체의 생명이 아닙니다.

물론 육체도 부활하지만, 예수님이 늘 말씀하시는 생명을 얻을 것이다 생명을 잃을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예수님께로부터 나온 우리의 진정한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니 착오가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주신 생명이 참 생명이요 더 중요합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있게 하는 생명이자, 우리의 진정한 희로애락을 느끼게 해 주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동물에게도 피가 흐르는 육체의 생명이 있지만, 인간이 느끼는 생명과는 완전히 다른 이유가 바로 이 인간의 생명은 창조주 되신 예수님께서 인간에게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반려견을 아무리 쳐다봐도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고 단지 살아있는 인형, 살아있는 로봇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바로 생명이 없어서입니다.

우리가 이 진정한 생명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올바른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8절

 

<요한복음 1장 리뷰에 대한 마무리 결언>


창조주 되신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예수님을 신성 모독이라며 돌로 치려 하였습니다. 신성 모독이 아니라 있는 사실 그대로를 얘기하신 것인데, 유대인들이 빛으로 나아오기를 싫어하여 인정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창조주 하나님 되시자 우리의 주인이 되십니다. 할렐루야~